10명의 일과 10명의 책임
Devchat Night에 다녀왔다. 다섯 세션이 다 “빌드 모드”를 말하는 자리였는데, 마지막까지 머리에 남은 건 세션 슬라이드에 적혀 있던 한 줄이었다.
개발자의 하루는 코드로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문제를 이해하고, 맥락을 찾고, 일을 나누고, 동료와 맞추고, 결과를 검증하는 과정 속에서 코드는 만들어집니다.
혼자 빠르게 만드는 시대를 전제로 깔아둔 행사에서, 하필 “일을 나누고, 동료와 맞추고”가 걸렸다. 다들 그 반대로, 나눌 사람도 맞출 동료도 없이 혼자 다 하는 쪽으로 가고 있어서다. 그 문장을 보는데 한 달 전 Bloom × Yonsei MBA 밋업에서 들은 말이 겹쳤다. 10명이 하던 일을 혼자 하면, 10명의 책임이 나한테 온다.
혼자 다 만드는 건, 된다
먼저 인정하고 시작하자. 혼자 다 만드는 건 진짜로 된다.
나는 사이드 프로젝트를 혼자 기획하고, 구현하고, 보안까지 챙기고, 배포까지 끝낸다. 커리어를 분재 그림으로 그려주는 웹 하나는 여섯 번 갈아엎고 보안·배포까지 혼자 밀어붙였다. 예전 같으면 기획자·개발자·디자이너가 나눠 가졌을 일을, 도구가 좋아진 덕에 혼자 처음부터 끝까지 가져간다. Devchat에서도 Bloom에서도 이 얘기는 좋은 소식처럼 나왔다. 문턱이 사라졌다고, 한 명이 팀 하나만큼 일한다고.
그런데 좋은 소식으로만 들리지 않았다. 인원이 10분의 1로 줄었다고 책임도 10분의 1이 되는 게 아니라서다. 인원은 1이 됐는데 책임은 그대로 10이면, 한 사람당 밀도가 10배가 된다. 그리고 그 10배 중 제일 위험한 게 검증이다.
검증까지 혼자였고, 나는 거기서 넘어졌다
혼자 만들면 검증도 혼자 한다. 당연한 말 같지만, 이게 무슨 뜻인지 나는 한참 뒤에야 알았다.
solvesk라는 오픈소스 헬프데스크를 만들어 공개했었다. 공개 전에 테스트도 돌렸다. 빌드 통과, 유닛 테스트 통과, 도커 스택 healthy. “된다”고 말할 수 있는 상태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한 문장에 찔렸다. LLM한테 그냥 “테스트 짜줘” 시키면 모킹 5개 달고 함수 스펙 그대로 베낀다는 말. 구현을 복사한 테스트라 초록불이 떠도 마음의 안정감이 전혀 없다는 말이었다.
solvesk 테스트 파일이 바로 떠올랐다. 열어봤더니 예상 그대로였다. vi.mock이 줄줄이 달려 ORM 내부까지 모킹하고 있었다. 구현을 조금만 바꿔도 빨간불이 켜지고, 막상 진짜 로직이 틀려도 잡아주질 못한다. 있긴 있는데 지키는 건 없는 테스트였다.
문제는 그게 아니다. 문제는 그 문장에 찔리기 전까지 나는 그걸 검증이라고 믿고 있었다는 거다. 만들 때 AI에 맡겼고 검증도 AI에 맡겼으니, 짜준 테스트가 초록불이면 통과라고 여겼다. 옆에서 “이거 구현 베낀 거잖아, 이걸로 뭘 지켜?”라고 말해줄 사람이 없었다. 팀이었다면 코드 리뷰에서 30초면 걸렸을 걸, 혼자라서 한참을 가짜 안정감 위에 앉아 있었다. 만드는 비용은 0이 됐지만, 검증하고 판단하고 마침표를 찍는 건 여전히 온전히 내 몫이었다. 도구는 생산을 대신해줬지 책임을 대신 져주지 않았다.
그래서 현장은 다시 팀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재밌는 건, 이걸 나만 겪은 게 아니라는 거다. 1인 빌더의 최전선에 있는 사람들이 다시 사람을 늘리고 있었다.
Bloom에서 SpaceY 황현태 대표가 팀 얘기를 했다. 생산성이 폭발하면 열댓 명이 나눠 갖던 프로젝트가 한 명에게 통째로 온다고. 모델이 좋아서 “해낼 수 있을 것 같아” 오히려 더 짊어지다 번아웃이 온다고. 그래서 다시 2인 1조, 3인 1조로 숫자를 늘리고 조 안에서 작업반장·엔지니어·서포터처럼 캐릭터를 나눠 준다고 했다. 그러면서 덧붙인 말이 남았다. AI 기술 얘기는 하나도 없다. 기술은 쉬워서 다들 잘 쓴다. 제일 어려운 건 팀플레이를 다시 짜는 거였다.
삼성전자 김성수 님도 결이 같았다. 상위 소수가 자원의 대부분을 쓴다고 그 한 명이 그만큼의 역량인 건 아니라고, 결국 아래쪽이 같이 많이 써야 조직 전체가 입체적으로 올라간다고. 두 사람 다 도구가 개인을 팀 크기로 부풀린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이미 지나온 사람들이었다. 혼자 다 하는 건 종착지가 아니라 과도기였다. 밀도가 어느 선을 넘으면 결국 다시 나눈다.
청구서는 그다음부터 날아온다
그러니까 “혼자 다 만드는 시대”는 축복이면서 청구서다. 도구가 없애준 문턱만큼을 혼자 짊어진다. 책임은 줄어드는 게 아니라 한 사람에게 응축될 뿐이다.
그럼에도 나는 계속 혼자 만들 거다. 이 방식이 주는 속도와 자유가 좋으니까. 다만 solvesk 이후로 생각이 하나 바뀌었다. 이 시대 1인 빌더의 진짜 일은 코드를 뽑는 게 아니라, 무엇을 안 만들지, 어디서 검증에 사람 손을 다시 넣을지, 언제 다시 팀을 부를지를 고르는 것이다. 그때 나는 권한 판단 로직을 순수 함수로 뽑아, 모킹 없이 입력과 출력만으로 검증되게 고쳤다. AI가 짜준 초록불을 믿는 대신, 혼자서도 검증을 설계할 수 있는 모양으로 코드를 바꾼 거다.
코드를 뽑는 건 공짜가 됐다. 청구서는 그다음부터 날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