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GI 근처라면서, 왜 사람을 부르는가
발표자가 청중에게 물었다. “지금 AI를 꺼버리면 본인 일의 생산성이 떨어질 사람?” 손을 들어보라고. 강의실의 거의 전원이 손을 들었다.
xAI 초기 멤버였고 지금은 다른 프런티어 랩에 있는 엔지니어의 토크였다. 그가 그 손들을 보며 말했다. 우리는 이미 AGI 근처에 와 있다고. 모델이 부족한 건 두 가지뿐이라고 했다. 처음 보는 환경에서의 학습 속도, 그리고 매일의 기억을 누적하는 능력. 그 둘만 빼면 사람이 하는 일의 상당 부분을 이미 한다.
그 말을 듣고 좀 이상했다. 그렇게 잘하는 도구라면, 나는 왜 사내에서 그걸 막는 일을 하고 있었을까.
나는 AI를 막는 코드를 짰다
사내에서 K8s 알림이 오면 매번 사람이 kubectl을 치던 걸 Claude Code 스킬로 자동화한 적이 있다. 그때 한 건 모델을 더 좋은 걸로 바꾸는 게 아니라, “이 순서로 진단해라”를 코드에 박고, 위험한 작업은 막아둔 것이었다. 상태만 읽는 kubectl은 바로 실행하되, 노드에 직접 들어가는 SSH는 사람 승인을 받고서야 돌게 했다. 잘못 건드리면 위험한 곳에 사람을 한 명 세워둔 거다.
행사에서 본 회사들도 다 그랬다. 채널톡은 멀티에이전트를 굴리면서도 매 단계마다 사람 승인이 없으면 다음으로 못 넘어가게 막아뒀고, 그란데클립은 에이전트들이 7분 만에 배포 직전까지 만들어도 사람이 검토한 뒤에야 내보냈다. 다들 AI를 더 풀어주는 게 아니라, AI 앞에 사람을 세우는 장치를 만들고 있었다.
이미 AGI 근처라면서, 왜 다들 사람을 그 안에 끼워 넣지 못해 안달일까.
한쪽 끝: 사람을 아예 지우려는 쪽
그 답의 한쪽 끝에 xAI의 Macrohard가 있었다. “마이크로소프트처럼 물리 하드웨어를 안 만드는 소프트웨어 회사는 원리적으로 AI로 전부 시뮬레이트할 수 있다”는 머스크의 발상에서 시작한 프로젝트인데, 발표자가 Q&A에서 정의를 명확히 했다. 만들려던 건 에이전트 하네스가 아니라 사람 에뮬레이터(Human Emulator), 즉 모델 그 자체였다. 컴퓨터 앞에서 사람이 하는 모든 동작에 플래닝·생각 단계까지 학습시킨 디지털 사람. 머스크의 정의대로면 사람 개입 없이 회사가 통째로 돌아가면 그게 AGI다. 사람을 모델 안에 통째로 넣어 끝내 바깥의 사람을 지우는 것. 가장 멀리 간 답이었다.
그렇다면 현장에서도 사람은 점점 밀려나고 있어야 했다. 그런데 같은 달에 다닌 다른 행사에서 본 건 정반대였다.
반대편: 사람이 더 들어오더라
그란데클립이 연 AX 밋업에서 라포랩스와 우아한형제들의 발표를 들었다. 둘 다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그게 Macrohard와 정확히 반대였다.
라포랩스는 전사 구성원이 각자 AI로 만든 스킬을 한곳에 모으는 스킬 마켓플레이스를 만들었다. 짚은 문제가 흥미로웠다. AI 도구를 풀어놓으니 양극화가 생기더라는 거다. 한쪽은 혼자 스킬 열 개씩 만드는 파워 유저, 다른 쪽은 “그거 그냥 챗봇한테 물어보는 거 아닌가요?” 하는 사람. 그래서 그들이 한 건 모델을 더 똑똑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진입 장벽을 낮춰 “AI 활용의 하단을 끌어올리는” 것이었다. 못 쓰던 사람을 쓰게 만드는 쪽으로.
우아한형제들 발표는 더 구체적이었다. 발표자가 자발적으로 사내 AI 스터디를 운영했는데, 거기서 나온 사례가 데이터 분석가 한 명이었다. 매번 제플린에서 CSV를 내려받아 시트에 올리던 반복을 “표 복사” 버튼 하나로 줄였다고. 거창한 게 아니다. 자기가 제일 하기 싫던 일 하나를 AI로 없앤 거다. 그런데 원래 말수도 없던 그 사람이, 그 뒤로 스스로 데이터 분석가들을 모아 스터디를 조직했다. 그리고 다음 파일럿 지원자 50명 중 개발자는 단 둘, 나머지는 전부 데이터 분석가·MD·마케터였다고 했다. 발표자 말로는, 개발자들은 자기가 이미 잘한다고 생각해서 안 오고, 비개발자 쪽의 흡인력이 훨씬 컸다고.
xAI는 사람을 모델 안에 넣어 지우려 하는데, 같은 시기 한국의 사무실에서는 AGI 근처라는 기술이 원래 코드 한 줄 못 짜던 사람들을 오히려 일의 주체로 불러들이고 있었다.
그런데 그 사람도 같은 말을 했다
더 묘했던 건, “이미 AGI 근처”라고 말한 그 xAI 출신 본인의 결론이었다. 그는 “모델의 ceiling은 이미 매우 높고, 이걸 어떻게 도입시키느냐가 또 다른 게임”이라고 했다. 모델 안에 사람을 통째로 넣으려던 프로젝트 한복판에 있던 사람이, 진짜 경쟁은 도입(adoption) 에서 난다고 말한 거다. 라포랩스가 하단을 끌어올린 것도, 분석가가 “표 복사” 버튼을 만든 것도 결국 그 이야기였다. 모델이 얼마나 똑똑한가가 아니라, 그 앞에 누가 설 수 있게 되는가.
그제서야 내가 짠 코드가 다시 보였다. 트리아지 스킬에서 SSH 앞에 사람을 세운 걸 나는 AI를 못 믿어서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나를 지운 게 아니라 그 일에 사람이 남아 있길 택한 것이었다. 모델을 사람으로 만드는 쪽과, 사람이 모델을 쓰게 만드는 쪽. 같은 기술 앞에서 방향이 정반대였고, 나는 후자 쪽에 서 있는 게 좋았다. 적어도 거기엔 사람이 더 들어올 자리가 있었으니까.